추억에 대한 경멸
추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. 지나간 시간은 대부분 추억이 되니까. 다신 그때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인지 추억은 그저 아름다운 것만 같다. 시간을 내서 추억의 얼굴들을 만나면, 나는 잠시라도 그 아름다움에 한 가닥이라도 될 수 있을까. 추억을 잠깐이라도 만나고 돌아오는 날은 생각보다 발걸음이 무겁다. 그리웠던 얼굴들을 봐서 마냥 재미있었다라고 끝내고 싶은 마음은 헛된 바람 뿐일까. 집에 돌아와 몸에서 한꺼풀씩 벗겨내 옷걸이에 거는 천조각이 더이상 무거울 수 없다. 추억에 한바탕 빠져있다 온 나는 무엇이 아쉬워 이렇게 무거워하는지.
생각해보면 추억의 무게는 이제껏 한번도 가벼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. 학창시절 동안 친구들과 나눠온 편지들을 책상 서랍 깊은 곳에서 꺼내보면. 왜 나는 지금 그들과같이 있을 수 없는지, 마음 한구석에 찬바람이 분다. 그들과의 기억으로 어떻게든 막아보려하지만 그들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이 막는 것은 내 숨 뿐이다. 아, 그때 우리. 하며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코 끝까지 아쉬운 한숨만 지나간다. 살아있는 추억들과 술자리도 역시 다르지 않다. 저기 저 코가 삐뚤어진 사람들은 그래서 2차, 3차, 4차를 끝없이 달리나보다. 추억이 만든 상처를 잊기 위해서, 추억이 만들 길고 긴 밤을 보내기 위해서. 술자리는 추억으로부터의 도피처이다.
이럴거면 어쩌면 추억 따윈 없는게 나을지도 모른다. 추억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잘 살고 있는 나를, 잘 살아갈 나를 옭아매다니. 그땐 좋았는데 그땐 좋았는데라며 부질 없는 말을 내뱉는것으로 시간 보낼 필요도 없을텐데.
추억이 없다면, 추억이 없다면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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